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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ntic

대서양 건너기 2 (Atlantic Crossing) - 기록 일지

by 요트타고 2023. 7. 31.

대서양 항해 2주간의 기록 일지

카보 베르데에서 2021년 1월 13일 세일을 펼치고 오전 8시쯤 출발했다. 카보 베르데를 벗어나자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신고식을 치르려는지 바람의 세기가 25에서 30 knots 정도로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장된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 오전 9시에 모니터 화면을 체크해 보니 (24시간 기준) 총 이동거리는 168 miles이었고 속도는 평균 7 knots를 유지했다. 대서양 항해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카보베르데에서 마르티니크까지) 거리와 평균 속도를 기록해 놨는데 대체적으로 하루 평균 160miles의 거리 이동을 했고 6 knots 이상의 속도를 유지했다. 이렇게 항해한 거리는 총 2203.8 miles이며, 14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대서양 항해는 시기만 잘 맞추면 한결 편안한데 그 이유는 캐리비안까지 다운 윈드 세일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람이 대부분 배 뒤에서 불어오니 각도 설정, 세일의 종류와 크기, whisker pole 이용 등 잘만 설정해 놓으면 도착지까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자이빙으로 도착하게 된다. 이번 크로싱에서는 파도가 오는 간격이 짧지 않았고 크기 또한 그리 크지 않았기에 배 흔들림도 적고 바람도 일정하여 수월하게 항해했다. 

세일링, 집세일, whisker pole
whisker pole을 이용하여 제노아를 메인 세일과 반대반향으로펼쳐 다운 윈드 세일링을 하는 모습

참고로 우리는 성인이 2명이라 낮에는 보통 휴식을 취하거나 콕픽에서(밖에서) 생활하였고 밤에는 5시간씩 돌아가며 나이트 왓치를 했다. 한명이 밤 9시부터 02시까지 밖에서 경비를 서고 02시부터 07시까지는 다른 사람이 경비를 서가며 밤을 보냈다. (예전에 지발타에서 마데라까지 2주 정도 논스톱으로 항해한 적이 있었는데 3시간씩 교대해 가며 생활하였더니 깊이 잘 수도 없을뿐더러 잠깐만 자다 일어나니 사람이 예민해지고 너무 피폐해져 갔다. 5시간씩 교대하는 건 훨씬 나았다.)  물론 혼자 하는 항해는 전적으로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항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보통 일정시간마다 깨서 밖을 체크하고 다시 자는 패턴으로 밤에 항해를 한다고 한다. 우리도 레이더와 AIS가 있지만 밤에는 바람이 바뀐다던지 아니면 레이더가 감지하지 못하는 컨테이너라던지 아님 커다란 배가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지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알 수 없는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고자 나이트 왓치를 했다. 적응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곤만 쌓여갔다.

밤바다, 보름달
아침이 오기 전의 바다

항해를 하는 동안 낮에는 수많은 날치들이 뛰어오르고 돌고래들이 장난 치듯 배 주위를 헤엄치며 노는 것을 보게 되고 밤에는 시커먼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밤하늘을 똑닮은 시커먼 바다에서 반짝이는 플랑크톤의 마법을 보게 된다. 거기에 돌고래까지 합류한다면 정말 그야말로 장관이다. 돌고래들이 지나온 자리에서 반짝반짝 길을 만들며 우리를 따라오는 그 광경은 바다에 은하수를 수놓은 듯싶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면서 아름다웠다. 밤바다는 무섭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신비롭다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2주 동안 매일 같은 풍경이 지속되니 처음엔 아름답고 즐거웠던 경험도 차츰 무뎌지면서 무심해졌다.

 아침이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배안으로 날라 들어와 죽어 있는 날치들을 목격하게 된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비상식량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만 했지만 한번 먹어 본 후론 (맛도 그럭저럭일뿐더러 가시도 너무 많다.) 다른 생명체의 먹이로 다시 바다에 돌려 놓았다. 나중엔 아침에 일어나 배 안의 날치들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리고 종종 낚시도 시도했는데 우린 그다지 좋은 낚시꾼들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 1마리의 마이마이(mahi mahi)만 잡았다. 크기가 엄청 커서 회로도 먹고 어묵도 해 먹고 생선 구이도 해 먹고 아주 요긴한 식량이었다. 이때든 생각은 커다란 냉장고를 항상 옆에 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잡지는 못해도 식량이 항상 있는 기분이었다. 잡아야 식량인데 말이다. 이건 하나의 팁인데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았을 경우 죽이는 것도 문제다. 처음엔 어떻게 할지 몰라 망치나 윈치 핸들로 내려치는데 한 번으로 잘 죽지도 않을뿐더러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눈동자가 계속 마음에 쓰이기 때문이다. 이렇때 한잔의 럼을 아가미에 부어주면 빠르게 숨을 거둔다. 

마이마이, 바다 생선
대서양에서 잡은 마이마이

우리 같은 경우 식사는 출발하기 전 대충 식단을 짜고 식재료 재고를 기록하였다. 이렇게 하면 재료도 골고루 사용할 뿐더러 식단도 매일 바뀌니 먹는 게 부실해지지 않고 식단 정하는 데에 어려움도 덜해 항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참고로 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요리하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전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사과만 5킬로를 구입했는데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항해가 길어질수록 통조림 사용 횟수가 많아져서 그런가 나중엔 과일이 그렇게 당겼다.

 샤워는 어찌 되었건 물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콧픽에서 바닷물로 씻고 마지막만 수돗물로 헹구는 방식을 유지했다. 이 방법은 배 안에 워터 메이커가 있지 않는 한, 배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은 moorings에서도 많은 배들이 이렇게들 씻는다. 

 2주라는 시간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데 항해하는 동안엔 유독 길게 느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다만 보이고 이 넓디넓은 바다에서 내 공간은 배의 크기 38피트가 다이기 때문이었던 같다. gps가 연결된 화면으론 분명히 이동하고 있는데도 언제나 제자리인 듯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하게도 온도가 상승하는 게 느껴졌는데 처음엔 반팔과 긴팔을 번갈아가면 입고 있던 내가 며칠이 지나니 반팔만 입고 있고 도착하기 3~4일 전엔 비키니탑과 반바지만 입고 있었다. 이렇게 옷이 얇아졌던 어느 순간 신기루인지 진짜인지 가늠이 안 되는 희미한 섬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모두가 웃었고 모두가 기뻐했다. 그리고 모두가 외쳤다. "land ho!!!"

마르티니크
드디어 도착한 마르티니크, 저 조그만 막대기들이 다 마스트이다.

마르티니크에 닻을 내리자마자 엔진을 끄고 모두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대서양의 항해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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